# 여행을 마치다
귀국한 지 벌써 4일이 지났다. 처음 이틀은 거의 빈사상태였고, 나머지 이틀은 여행 후 남은 물품들을 정리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슬슬 40일 간의 여행도 정리해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모르겠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다. 일단, 여행을 결심했던 때부터 천천히 정리해봐야겠다.
# 여행을 결심하다
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것은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작년 여름방학 이었다. 이대로 졸업하고 취업해버리기엔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막연히 유럽에 가고 싶었다. 그래서 휴학을 결심하고 졸업을 늦췄다.
문제는 언제 가느냐였다. 어쨌든 성수기는 피하고 싶었다. 바글거리는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정신 없이 여행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9월~10월이나 3월~4월 중에 가기로 생각했고 결국 후자로 정했다. 아마 예비군 문제로 그렇게 정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이차 저차 해서 결과적으로 5월 초에 가기로 했다.
처음에는 정말 막막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몰랐다. 그래도 카페 너머로 본 건 있어서, 여행 준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동선 짜기부터 시작했다. 대부분이 그렇듯 '런던in - 파리out'으로 정해놓고 중간 루트를 정하기로 했다. 중간 루트는 여행사 상품과 여행 책자를 참고했다. 그래서 나온 초안이 바로 아래와 같다.
5/9 영국(런던, 맨체스터) => 벨기에(브리셀, 브뤼헤) => 네덜란드(암스텔담) => 독일(쾰른,하이델베르그,뮌헨) =>체코(프라하) => 오스트리아(빈) => 이탈리아(베네치아,로마,피렌체) => 스위스(루체른, 인터라켄) => 프랑스(니스,아비뇽,몽펠리에) => 스페인(바르셀로나) => 프랑스(파리)
런던 입국일이 5월 9일인 이유는 그 다음날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가 있어서 였다. 하지만 귀국일은 확실히 정하지 못했다. 각 나라별로 얼마나 머물러야 좋을지, 얼마나 머무르고 싶은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충 여기 저기 참고해서 일정을 더 자세히 세워보았다.
세부일정 확인
5/9 런던 in ~ 6/12 파리 out 총 34일 간의 여행 일정이었다. 런던, 로마, 파리 등 왠지 오래 있고 싶은 곳은 3박 이상으로 잡았고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 한 도시들은 1
# 본격적인 여행준비
처음에는 여행사 상품에 맞춰서 가려고 했다. 돈만 지불하면 [비행기+숙소+열차+동선]은 알아서 해주니까 별 준비 없이 쉽게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때 봐둔 상품이 ‘하나투어’의 27박 29일 상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도 세부일정은 세워야 했기 때문에 네이버 모 카페에서 이것 저것 여행 정보를 얻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 보니, 왠지 짜여진 스케줄에 맞춰 여행하는 것 보다는 힘들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준비해서 다녀오는 여행이 뿌듯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고민한 끝에 혼자 준비해보기로 결심했다. 이 때가 바로 4월 20일쯤.
# 여행 일정 세부 조정
루트가 거의 손 댈 곳이 없었지만 이차저차 하여, 런던에서 여행을 시작하지 않고 파리에 잠시 들렀다가 벨기에부터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런던에서 시작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약간 불안했다. 이상하게 꼬여버린(?) 내 일정을 본 사람들이 왜 런던in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고. 근데 여행이 끝난 지금 생각해보면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 아니었다 생각한다.
런던에서 여행을 시작했다면 할 것 많고 볼 것 많았던 런던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텐데, 34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가니 짧은 시간에 너무 알차게 런던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그 외 여행 일정에 대해 조금 조정과정을 거친 결과 다음과 같은 일정이 나왔다.
세부일정 확인
요약하면 10개국 18개 도시다.
벨기에(브뤼셀, 브뤼헤) 네덜란드(암스텔담) 독일(쾰른, 하이델베르크, 뮌헨) 체코(프라하) 오스트리아(빈) 이탈리아(베네치아, 로마, 피렌체, 밀라노) 스위스(루체른, 인터라켄) 프랑스(니스, 파리) 스페인(바르셀로나) 영국(런던)
처음 계획보다 6일이 늘어났다. 사실, 일정에 맞추다 보니 40일이 된 것이 아니라 40일에 맞춰서 일정을 조정했다. 이유는 아래에.
[혼자 vs 동행] 다음으로 고민이 되었던 것이 [힘든 일정+많은 도시 vs 여유 일정+적은 도시] 였다. 각자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난 전자를 택했다. 내 성격에 더 잘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정신 없이 옮겨다니다가 여행이 끝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40일이었다. 30일은 너무 짧은 것 같고 50일이나 60일은 너무 길고 비용도 많이 들어갈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잘한 선택이었다. 조금 힘들고 정신 없긴 했지만 여러 국가와 도시를 돌아다닌 덕분에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내가 선호하는 스타일의 여행이나 도시 등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런던이나 파리는 거의 6일의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고, 로마나 바르셀로나, 니스 등에서도 거의 3일을 보냈고, 나머지 도시들도 거의 2일 정도는 여유롭게 본 것 같다. 아마 두 번째 여행에서는 [여유 일정+적은 도시]를 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제는 어떤 도시가 나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오는지 알았으니까.
# 비행기표
동선을 다 짜고 난 후 해야 할 일은 비행기 표를 구매하는 일이었다. 원래는 값싼 비행기 표를 먼저 구하고 그 날짜에 맞춰 출국 일을 정해야 하는데 사정상 일정에 맞춰서 비행기 표를 구해야 했다.
계획했던 대로 5월 6일에 출국하는 비행기표를 알아보다가 KE901편이 제일 괜찮아 보여서 구매했다. 조금 더 일찍 여행준비를 했더라면 좀 더 싼 비행기 표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웠다. 그리고 조금 불편해도 다른 곳을 경유하는 비행기를 탔어도 예산을 좀 줄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 열차 시간 확정 & 쿠셋 예약
비행기표를 구매하고 나니 ‘정말 여행을 떠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로서 출국 일은 확정되었고 이제 남은 일은 도시와 도시간 이동 시 열차 시간을 확정하고 예약이 필요한 구간을 예약하는 것이었다. 열차 시간을 정하고 예약을 하는 과정에서 여행루트가 바뀌는 경우도 있어서, 이 과정을 끝내야 최종 루트를 뽑아내고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일단 40일 간의 여행인지라 ‘유레일 30일 패스’를 구매했고, 파리에서 런던으로 가는 ‘유로스타’ 티켓도 구매했다.. 운 좋게도 내가 여행을 준비하던 시점에서는 생일이 지나지 않아서 만 25세였기 때문에 유스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각 도시를 운행하는 열차 시간표는 독일철도청 홈페이지(http://reiseauskunft.bahn.de/bin/query.exe/en)를 이용했다. 출발 역과 도착 역을 입력하고 검색하면 열차 운행 시간표가 나온다. 이걸 보고 재량 것 몇 시 기차를 탈 지 정한다. 이 때 중요한 건 출발&도착 역 명, 출발&도착&소요 시간, 열차 편 명 등을 정확히 메모해야 한다는 거다. 사소한 것 같지만 굉장히 중요하다. 열차를 제 시각에 타고 싶다면..그리고 귀찮아도 가능하면 자기가 정한 시간 앞 뒤 열차도 메모해 두면 좀 더 탄력적인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여기서 알아보고 가더라도 현지에 도착하면 다시 한 번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거 .열차 시간은 플랫폼에 있는 노란색 게시물을 확인하던가 열차 역에 널려(?)있는 전광판 등을 확인하면 된다. 노란색 게시물은 Arrival(도착)과 Departure(출발) 시간 두 개로 나뉘어져 있으니 잘 확인하자.
아무튼 독일 사이트를 검색 하다 보면 구간 중에서 R이라고 되어 있는 게 있는데 이 구간은 예약을 해야만 이용 가능한 구간이다. 이탈리아 에우로스타(Euro Star)는 거의 전 구간이 R일 것이다. 때문에 이탈리아 여행 구간은 죄다 예약을 해서 갔다. 망할 이탈리아-_-;; 현지에 도착해서 나폴리나 피사 등 다른 근교를 갈 때에도 (다른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유레일 패스 소지자도 따로 추가 요금을 내야 했다. (5~15유로, 열차 종류에 따라 차등)
그리고 그 다음 중요한 건 야간열차 예약. 내가 짠 일정의 경우 [빈-베네치아] [뮬루즈-니스] [니스-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파리] 4개 구간이 야간열차 구간이었다. 일반좌석으로 탈 경우 굳이 예약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일반좌석에 앉은 채 10시간 이상 열차를 탈 자신이 없어서 쿠셋을 이용하기로 했다.
참고로 쿠셋은 6인실 침대 칸으로, 일반 좌석이나 컴파트먼트 보다 여러 가지 면(누워 잘 수도 있고, 짐도 안전하게 보관 가능하고 등등)에서 편하고 좋다.
[빈-베네치아] 구간은 문제 없이 예약을 했다. 그런데 [뮬루즈-니스] 구간이 문제였다. 원하는 날짜에 예약이 꽉 차서 구매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할 수 없이 계획보다 하루 일찍 예약했다. 이 때문에 스위스 일정이 1박 2일로 줄고 니스 일정이 3일로 늘어나버렸다. 정말 잊지 못할 거다. [뮬루즈-니스] 구간. 너무나 짧게 요약했지만, 여행 준비하면서 가장 골치 아팠던 순간이었다.
# 저가항공 이용
[뮬루즈-니스] 구간을 성공적으로 예약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겨버렸다. [니스-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파리] 구간의 쿠셋 예약비가 터무니없이 비쌌던 것이다. 그래서 야간열차 대신 저가 항공을 이용해보기로 했다.
저가항공은 유로스카이(http://www.eurosky.co.kr/)라는 사이트에서 노선을 검색하고 구매했다. 영어에 자신있거나 수수료를 내기 싫은 사람들은 각각의 저가항공기 사이트에 가서 구매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다.
아무튼 두 구간을 운행하는 대표적인 항공사는 ‘뷰엘링’이라는 스페인계 회사가 있었다. 가격을 알아봤더니 10~20만원 사이인지라 예약했다. 여기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여행 준비를 좀 더 일찍 했다면 저가항공 티켓 역시 더 싼 값에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중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저가항공 이용에 대한 불안감은 버리자. 나도 직접 이용해보기 전 까지는 반신반의 했는데 일반 메이저 항공사를 이용하는 것과 별 반 다르지 않았고 서비스도 괜찮았고 가격 면에서도 굉장히 만족했다.
어쨌든 말 많고 탈 많던 교통편 예약이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현지에 가서 해도 충분히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대행비도 좀 줄었을 텐데. 이것도 좀 아쉽다. 비수기라 가능했던 것일까, 그래도 성수기에는 한국에서 미리미리 예약하고 가는 게 좋을 거다.
# 숙소 예약
숙소의 경우 열차와는 조금 다르게 힘들었다. 원래 나는 민박집으로 다 잡으려고 했는데 한국인을 되도록 적게 만나고, 외국인들과 자주 부딪혀보고 싶어서 호스텔로 많이 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괜찮은 선택이었다. 호스텔이 민박집보다 시설도 좋았고 교통편도 괜찮았다.
벨기에와 네덜란드 프라하 파리 런던은 민박집을 잡았고 나머지 국가는 호스텔을 알아봤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집은 홈페이지가 따로 있어서 쉽게 접근이 가능했다. 게시판에 'OO날 예약 가능해요?' 라고 물으면 금방 답변이 왔고 대금 지급도 계좌이체로 가능했으니까.
호스텔의 경우는 case by case였다. 호스텔월드 같은 사이트에서 간편하게 available을 확인하고 예약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었지만 이메일로 따로 보내야 하는 곳도 있어서 그게 좀 번거로웠다. 준비기간이 짧아서 빨리 확답을 받아야 하는데 답메일이 올 때 까지는 all stop해야 해서.
근데 이렇게 한국에서 고생해가며 숙소를 예약하고 막상 여행지에 도착하니 숙소에 여유가 있어보였다. 현지에 가서 찾아봐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몇몇 인기 있는 호스텔은 제외하고.
이렇게 까지 동선&비행기표&숙소&열차를 다 정하고 나니 여행 떠나기 이틀 전이더라-_-;; 일주일 만에 초스피드로 준비해버렸다. 이거 준비하느라 일주일간 아무것도 못하고 여기에 매달린 것만 생각해도 토나온다. 쿠엑.
# 가이드북
시중에는 참 많고 다양한 가이드 북이 있다. 어떤 것을 고를지는 각자의 취향에 맡기고. 일단 나는 '이지 유럽'을 골랐다. 편집이 깔끔하게 되어 있고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루트 작성표다. 저작권 문제가 있을 것 같아서 사진을 올리지는 못하겠다.
아무튼 어떤 가이드 북을 고르던 문제는 두께인데, 대부분의 책들이 분권이 되어 있긴 한데 문제는 분권도 두껍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들..돈 좀 들여서 자기 루트 차례에 맡게 나라를 재 배치하고 필요 없는 도시들은 다 빼버리고 3권에서 4권 정도로 분철하면 여행 내내 들고다니기 참 편하다.
# 짐싸기
짐은 대충 가이드 북을 참고해가며 꾸렸다. 세세한 것 까지 다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호스텔이나 민박을 이용한다면 슬리퍼 정도는 챙겨가는 것도 좋을 듯. 해변을 간다면 수영복을 가져가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대충 이정도 챙겨가면 12kg정도 나온다. 40일 뒤 돌아왔을 땐 없어진 것도 추가된 것도 생겼다-
아무튼 [캐리어VS배낭] 사이에서도 조금 고민했는데, 배낭을 가져가기로 했다. 양손의 자유도 느낄 수 있고 아무래도 [배낭여행]이니까? 라고 해야할까. 사실 캐리어가 더 편해 보였는데. 요즘은 배낭을 잘 안 매고 다닌다. 거의 캐리어 끌고 다니지. 어차피 숙소에 던져놓고 보조가방을 들고 돌아다니면 되니까.
그리고 복대도 챙겨가긴 했는데, 막상 유럽 가니까 복대를 맬 필요성까지는 못 느꼈다. 그냥 보조가방에 중요한 물품이나 돈 넣어가지고 다녔다. 나중에도 언급하겠지만 나, 굉장히 안전하고 여유롭게 돌아다녔다. 이렇게 해서 모든 준비를 끝냈다.
# 결과론
어쨌든 계획했던 동선대로 잘 움직인 것 같다. 예약했던 열차나 비행기가 연착되지도 않았고 (저가항공이 약 1시간 연착한 것 빼고는). 뮌헨=>프라하 일정이 조금 조정되었고(내가 원해서) 그리고 오래 머문 도시에서는 근교도 다녀오느라 전체적으로 약간씩 바뀌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40일간 나의 동선은 아래와 같았다.
세부일정 확인
벨기에(브뤼헤, 브뤼셀) 네덜란드(암스텔담, 쾨켄호프) 독일(쾰른, 하이델베르크,뮌헨,가르미슈) 체코(프라하) 오스트리아(빈) 이탈리아(베네치아,로마,바티칸,피렌체,밀라노) 스위스(루체른,인터라켄,스피츠) 프랑스(니스,모나코,파리) 스페인(바르셀로나) 영국(런던,윈저)
10개국 24개 도시다. 만약 바티칸과 모나코를 국가로 치면(참고로 바티칸과 모나코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 1,2위) 12개국 24개 도시를 다녀온 셈 이다 .
# 보너스
여기까지 열심히 읽으신 분께 보너스. 읽은 사람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_-;; 일정을 어떻게 세워야 할 지 감이 안오시는 분들은 내가 만든 일정표를 첨부했으니 다운받아서 참고해보시길. 나도 이 포맷을 모 카페 어느 회원분이 올리신 걸 기본으로 편집한건데, 도움이 되려나 모르겠네.